오늘의 음악/클라식

스트라빈스키 / 페트루슈카(Petruschka)

채널54 2025. 5. 17. 05:45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a. The Shrovetide Fair – The Crowds – The...

https://youtu.be/o_rEJenI4d8?si=u1Aeq4M1K8-H7Kz6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b. Russian Dance

https://youtu.be/6eStyCb5mms?si=YHTG7yiVhNX9wG8h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I. Petrushka's Room

https://youtu.be/rumdrgdOxXQ?si=QYEQyoCROy1o25ml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IIa. The Moor's Room – IIIb. Dance of the Baller

https://youtu.be/tpqNGhyJRgo?si=cxZytux_5SK1MYoC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IIc. Waltz. The Ballerina and the Moor

https://youtu.be/uX7W4YOluoo?si=rUA9Loo1bik55WWI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a. The Shrovetide Fair (Evening)

https://youtu.be/vZjI65du2KQ?si=wmnkG6BssXG1gjYa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b. Dance of the Wet-Nurses

https://youtu.be/fLjgix0d4v0?si=3BjiO0505DyjGBja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c. Dance of the Peasant and the Bear

https://youtu.be/niGy4fpXUOo?si=FgkPBw6XJGJnFGEB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d. The Jovial Merchant with 2 Gypsy Girls

https://youtu.be/dlSzfeaY78I?si=HhMc1bQxJ3Jyktyn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e. Dance of the Coachmen and the Grooms

https://youtu.be/N0lPh4CE6Xo?si=LX3-I2NyguAD3nP2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f. The Masqueraders

https://youtu.be/pDGHOBgO3lY?si=9iWYZZgMQX-CiIIv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g. The Scuffle

https://youtu.be/yHF5mHDMxyo?si=7Vpn2ZoJmYEq0uX1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h. Death of Petrushka

https://youtu.be/LIsTUAI_ZTE?si=sZfyUPzoo5NqByvE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i. The Police and the Charlatan

https://youtu.be/8asubqaKnRw?si=jOHPomKXUx5Rw_1-

 

Stravinsky: Petrushka, K12 (1947 Version) : IVj. Apparition of Petrushka's Ghost

https://youtu.be/xf0idsy7MvU?si=KSM9GkqN4NIOqX7A

 

<페트루슈카>는 원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일종의 협주곡 스타일로 구상되었던 작품이므로, 스트라빈스키가 이 곡의 피아노 버전을 만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21년 스트라빈스키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위해 페트루슈카에서 세 곡을 뽑아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루빈스타인이 페트루슈카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해줄 것을 의뢰하였고, 루빈스타인은 여러 해 동안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

1경 중 '러시아 무곡'

작품 줄거리

1830년, 부활절이 며칠 남지 않은 페테르부르크 광장의 사육제 시장은 인파로 붐빈다.

가설흥행장과 수레상인, 그리고 각 계층의 사람들. 가설흥행장의 주인인 인형 조종인이 등장해 피리를 불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페트루슈카>는 극중극의 형태로 시작된다.

막이 열리면 세 개로 나누어진 방에는 부동자세의 인형이 있다. 새빨간 의상의 발레리나가 가운데 방에 있고,그 오른쪽 방에는 창백한 얼굴의 페트루슈카, 왼쪽 방에는 칼을 찬 늠름한 체격의 무어인이 있다.

페트루슈카는 발레리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발레리나는 오히려 무어인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제1경이 끝난다.

제2경에서는 방에 갇혀 있는 페트루슈카가 고독과 고뇌, 발레리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적인 무어인에 대한 증오심을 호소한다. 이때 발레리나가 나팔을 불며 들어오고 페트루슈카는 너무 기뻐서 자신의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 서툰 꼴을 본 발레리나는 도망쳐 버린다.

제3경에서 무어인이 코코넛으로 장난을 치다가 가지고 있던 칼로 코코넛을 깨려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코코넛에 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서 마루 위에 놓고 엄숙히 회교도식의 절을 한다.

이때 무어인의 위풍당당한 풍채와 힘에 반한 발레리나가 들어와 진묘한 파드되(pas de deux_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가 시작된다. 페트루슈카는 사랑하는 발레리나를 지키려 하지만 무어인은 칼로 그를 쫓아버린다. 페트루슈카가 나가자 무어인은 발레리나에게 구애를 한다.

제4경은 다시 눈 내리는 황혼의 사육제. 축제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으면서 군중의 수도 늘어난다. 곰 사육사들이 재주를 부리는 가운데,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러시아 농민의 춤과 마부들의 힘있는 춤이 시작된다.

이때 갑자기 무어인에게 쫓기고 있던 페트루슈카가 군중 속을 헤치며 뛰어들어 온다. 발레리나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무어인은 칼로 페트루슈카를 쓰러뜨리고 만다. 삽시간에 군중들이 쓰러진 페트루슈카를 에워싸고 급히 달려온 경관은 쓰러진 페트루슈카가 인형임을 알고 안심한다.

하지만 군중들이 흩어지고 주인이 페트루슈카를 옮기려 할 때 흥행장 지붕 위로 페트루슈카의 영혼이 나타난다. 놀란 인형 조종인은 급히 달아나 버린다.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주연 인형의 개성을 표현할 만한 이름을 고심하던 중 ‘페트루슈카’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한다. ‘페트루슈카’는 러시아 농민에게 흔한 이름인 페터의 애칭이다.

작품 해설

<페트루슈카>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으로 전 4악장이다. 스트라빈스키와 브누아의 대본에 의한 4개의 정경으로 이루어진 벌레스크풍 발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911년 6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주연_니진스키)의 공연과 P. 몽퇴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니콜라이 1세 치하의 페테르부르크를 무대로 세 인형 사이에 펼쳐지는 사랑의 비극이 그 내용으로, 러시아 하류계층의 비극과 불행을 다루었다.

이 작품은 인형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갖가지 고통과 비극을 겪어야 하는 인형 페트루슈카의 심리적 묘사를 음악의 주제로 삼은 발레 음악이다. <불새>(L'Oiseau de Feu)를 발표하고 일약 세계적인 작곡가로 부상한 작곡가가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과 불타는 의욕을 지니면서 1911년 로마에서 페트루슈카를 완성시켰다.

<불새>와 더불어 스트라빈스키의 불세출의 걸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처음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순수 기악곡으로 착상되어 일단 완성되었다가 디아길레프가 '발레 뤼스'를 위한 새로운 작품을 의뢰하자 발레곡으로 형태가 변경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의 제1경과 2경에서 피아노가 마치 협주곡의 경우처럼 중심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발레 음악 가운데 예술성이 그의 어떠한 작품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도시에 살고 있던 예술가들의 협동이 있었다. 당시 스트라빈스키는 로잔·페테르부르크·로마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본작가인 부누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대본을 썼고, 안무가 포킨은 파리와 로마에서 이 작업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초연 수주 전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는 "곡을 쓰는 동안 내 마음에 갑자기 생명이 주어진 인형에 대한 명료한 그림이 들어왔다. 그것은 악마적인 아르페지오의 폭포를 동반한 오케스트라의 울림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트럼펫의 맹렬한 응수가 더해진다. 그 결과 가엾은 인형의 의기소침과 슬픔을 오케스트라의 총주 속에서 클라이맥스가 엄청난 소음으로 표현된다"라고 쓰고 있다. 결국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박진감 넘치고 익살스럽고 즐거운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이 곡이 초연될 무렵 음악가들은 '아주 거친 작품'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처음 악보를 받아본 연주자들은 비웃거나 연주를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상 이 작품은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페트루슈카 코드'라고 불려지는 복조의 조성이 늘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2개의 조성을 말하는 것인데, 스트라빈스키는 C major와 이와는 가장 먼 F# major를 동시에 연주하는 2개의 코드를 즐겨 쓰고 있다. 이것은 페트루슈카가 지니고 있는 2개의 캐릭터, 즉 인간적인 것과 인형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페트루슈카는 마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고 동시에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한낱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페트루슈카 코드는 바로 이러한 두 입장을 아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러시아 민요들을 도입하거나 다른 작곡가들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베버의 플루트 협주곡에서 빌려온 선율이 마술사의 플루트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담고 있는 곡으로 평가받는 <페트루슈카>는 민요 선율의 차용과 더불어 전개 없이 반복되는 모티브가 특징적이다. 또한 작품명을 그대로 인용한 ‘페트루슈카 화음’은 스트라빈스키만의 음악어법을 탄생시켰다.

스트라빈스키(Igor Feodorovich Stravinsky, 1882-1971)

왕실 소속의 저명한 베이스 가수인 아버지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스트라빈스키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을 전공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했지만 재학 중에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알게 되어 그에게서 본격적인 작곡법과 관현악법을 배우게 됩니다.

일련의 습작 과정을 지난 뒤 1910년 러시아 발레를 위한 무용곡 <불새>를 발표하여 독자적인 개성과 대담한 수법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페트루슈카>로 대성공을 거두며, <봄의 제전>(La Sacre du Printemps)으로 낭만파의 잔재, 인상주의의 짙은 안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파리 음악계에 찬반 양론의 거센 폭풍을 일으키며 혁명적인 현대파의 거장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페트루슈카>를 정점으로 새로운 길을 지향하여 1923년 무렵부터 신고전주의로 전향하고 많은 문제작을 발표하면서 현대음악의 기수로 매진하던 중 1940년 전쟁을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또 한 번 전기를 맞습니다. <오르페우스>(Orpheus),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The Rake's Progress) 등을 발표하며 절정기를 맞이한 그는 이후 종교음악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지휘자로서도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는 고국의 혁명에도 무관심하였고, 그가 미국에 머문 것도 전쟁으로 작곡 활동에 방해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스트라빈스키만큼 비평가나 학자의 혹독한 비판을 받은 작곡가도 드물고 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진폭도 매우 넓은데 그것은 그의 작품마다의 ‘변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가 20세기 음악의 참된 혁신적 존재이며, 중요한 시점에서 항상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온 예언자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