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물 위에서 노래하다, D. 774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 제럴드 무어

https://youtu.be/hO_Pr8R3kkE?si=A9ssv4ArsUpeQuJ0

 

슈베르트: 라헨과 바이넨, 777년 사망

https://youtu.be/ZUB-AfeFXEY?si=cUVcILUHGzB7woNq

 

슈베르트: Ruh의 죽음, 776년 사망

https://youtu.be/HvbXjtIxtIY?si=ns-z-iYDvHKvZGBB

 

슈베르트: 방랑자, D. 489 "그녀에게 가리라"

https://youtu.be/yYiPIc9KYAw?si=dBatV-koqNSspiio

 

슈베르트: 슈바넨에상, D. 957: 세레나데

https://youtu.be/yOsox0FFT4s?si=rNhh_mObnclJnbc1

 

슈베르트: 외로운 자, D. 800

https://youtu.be/9fN5wDg0jrw?si=fTyYfNi3dJ2eJOq4

 

슈베르트: 『내 아벤드로트』, 799년 사망

https://youtu.be/TRlv24SXN5A?si=XKSnYQ54ytob1cL9

 

슈베르트: An Sylvia, D. 891 "실비아는 누구인가?"

https://youtu.be/fmKwF7zuZI8?si=C16KgzDSnI2uheRI

 

슈베르트: 세레나데 "호르히, 호르히! die Lerch', 사망 889년

https://youtu.be/lwWYOBHmcAQ?si=Px5xXEwcGrNZ0k6P

 

슈베르트: Sei mir gegrüsst, D. 741

https://youtu.be/cWQxEL8aJ60?si=SpNJUcbtLgNHcW-3

 

슈베르트: 블리스, 사망 433년

https://youtu.be/HDYmHZkkzcI?si=aWd5bupyQ1-NYfNP

 

1. 개요

독일 출신의 바리톤 가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크리스타 루트비히, 프리츠 분덜리히, 헤르만 프라이 등과 함께 2차대전 후의 독일 음악계를 대표하던 성악계의 거장이다.[1]

2. 생애

베를린에서 고전문학자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를 부모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음악가가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노래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열여섯 살 때부터 성악 교사인 게오르크 발터에게 수업을 받게 했다. 이어 전쟁 중이던 1942년에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에 들어가 헤르만 바이센보른에게 계속 배웠는데, 전황이 악화되자 한 학기를 마친 직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독일군에 징집되었다.

징집 후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치르다가 1945년에 미군포로가 되었고, 2년 동안의 포로 생활 중에 독학으로 성악 기술을 계속 연마하면서 수용소에서 첫 독창회를 열었다. 종전 후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 했고,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1948년 1월에 RIAS(베를린 미군 점령 지구 관할 방송국)의 방송 음악회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부른 것이 호평을 받아 전문 성악인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베를린 시립오페라단에 들어가 오페라 무대의 경험도 쌓기 시작했고,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과 의 빈 국립오페라단에서도 차례로 데뷰했다. 1951년에는 노장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눈에 들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그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구스타프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공연해 성공을 거두었고, 영국의 에든버러 음악제에서도 브람스 가곡의 밤을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영국 공연의 성공으로 당시 영국 최고의 가곡 반주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와 파트너를 이루어 수많은 가곡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피셔-디스카우와 제럴드 무어. 아직 서른 살도 되기 전의 사진이다.

이어 1952년에는 처음으로 미국 순회 공연도 했고, 바그너 애호가들의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탄호이저의 볼프람 역으로 데뷰했다. 이외에도 유럽과 미국 각지의 오페라극장에서도 계속 러브콜이 들어왔고, 바흐 음악을 새롭게 연주하려고 했던 지휘자 칼 리히터의 눈에도 들어 마태수난곡을 비롯한 여러 종교음악 작품들의 독창자로 자주 섭외되었다.

리히터와 피셔-디스카우. 다만 피셔-디스카우는 리히터와 처음 대면했을 때 엄격함과 고집 때문에 다소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공동 작업을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1960년대에는 기존 작품 외에 당대 작곡가들이 내놓은 현대음악 신작들로도 레퍼토리를 넓히기 시작했고,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과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의 '노래의 장면', 한스 베르너 헨체의 '젊은 연인들을 위한 비가', 비톨트 루토수아프스키의 '수면의 공간', 윤이상의 교향곡 제5번 등의 초연 독창자 혹은 헌정자로 공연했다. 1978년에는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했는데, 은퇴 공연에서도 독일 현대 작곡가인 아리베르트 라이만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의 희곡을 오페라화한 리어왕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오페라 무대 은퇴 후에는 주로 가곡 리사이틀과 합창곡 연주회 위주로 활동했고, 성악가 외에 지휘자로도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창력 감퇴가 시작되자 활동량을 점차 줄이기 시작했고, 1993년의 첫 날 공연을 마지막으로 가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지휘 활동과 미술, 성악 교육, 음악 저술 등으로 여생을 보냈고, 노래 대신 시 낭송회나 극음악 공연의 대사 낭독 등으로 무대에 종종 서곤 했다. 2012년 5월 18일에 87회 생일을 열흘 앞두고 바이에른의 베르크 바이 슈타른베르크에 있는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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